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
일찍부터 관찰사와 감영이 위치해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감영으로 이송되었으며,
배교하기를 거부할 경우 사형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당하였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를 합하면 총 337명인데,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이 곳 공주에 있는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100년간의 한국 천주교 순교 역사에서 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순교자들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며
고귀한 피를 흘렸던 거룩한 땅이다.
예로부터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였다 하여 황새바위,
또는 죄수들이 목에 커다란 항쇄 칼을 쓰고 처형당한 곳이라 하여 항쇄바위라고도 불렸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순교자를 남기며 한국 천주교회의 초석이 된 순교지인데
프랑스 신부였던 샤를르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라고 밝히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교 계단을 오르면 예수성심상이 순례자를 반긴다.
2018. 1. 29.
초입에 있는 성당
성물방
순교성지 건너 편에는 공주중학교가 있는데 펜스에 붙여 놓은
38회 졸업생 박찬호 선수 -지금은 은퇴했지만-의 모습
계단 위에는 돌문이 자리 잡고 있다.
돌문 못미쳐서 오른편에 있는 몽마르뜨 광장의 모습
돌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있는
열 두 사도를 상징하는 열두개의 빛 돌은 동시에 이곳에서 순교하신 337명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순교자들이 처형당할 때 사용되었던 칼을 서로 맞대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 순교탑
순교탑 외부에는 고문을 하던 형틀이 놓여 있다.
순교탑 내부의 모습
예수님의 돌무덤을 형상화한 무덤경당은 죽음과 부활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허리를 굽히고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순교자들을 기리는 공간과 만날 수 있다.
무덤 경당에서 지하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올 수도 있게 되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부활 광장에는 큰 돌 제대와 12개의 거석이 세워져 있다.
이 거석들 역시 12사도와 순교자들을 상징하는데 거석 뒤에는 337위의 순교자들 이름을 새겨 놓았다.
신자들의 기도가 담겨 있을 고상들 그리고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십자가들을 연상 시킨다.
멀리 공산성이 보인다.
이 곳에서 공개적인 처형이 있을 때면 공산성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부활광장 옆으로는 부활경당이 있는데
경당 안에는 4,000여점의 백자 도자기 평판 벽화 작품들이 4면을 둘러싸고 있다.
부활경당 외벽에 있는 성모상
이 작품들은 어는 노(老)화백이 3년간의 기도와 희생으로 이룩한 것이라 하는데
안에 들어서는 순간 숙여해 질 뿐이었다.
4면에 단 하나의 통로인 출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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