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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해리"

책 그리고 영화

by 僞惡者 2018. 10. 2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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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해 줘. 최소한 명백하게 악을 목격하게 된다면 모른 척하지 말아줘."

"멱살을 잡지는 못해도 소리쳐 줘! 여기 나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고.

 그냥 원래 다들 이래요. 나쁘게 생각하면 한도 없어요. 이러지 말자고."  1권 P277,278

20여년이 지나 마주한 김남우에게 한이나가 토해내는 말에는 그 세월만큼이나 깊은 아픔이 있다.

하지만 공허하다.

바다로 상처처럼 길고 깊은 붉은 긴노을이 지고 있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그 날!

김남우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한이나가 본 것은 일 초도 안되는 찰나였지만

그의 외면은 한이나를 20여년이나 거대한 빙하 속에 가두게 했다.


다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그 날로 돌아간다면,

김남우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칠 수 있을까?

악을 저지르고 있는 가해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은 존재인데 말이다.

성인도 아닌 고등학생, 착한 성당 오빠에게서 용기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엔 억지고 모순이다. 

어쩌면 그의 외면은 20여년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진행되는 우리들의 자화상일 지도 모른다.


작가는 후기에서 말하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고발하고 싶었던 그들을 위해 기도할 자신이 없었다면 불의를 고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마저 분노와 증오에 휩쓸려 간다면 차라리 어떤 것이라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은 확실하다." 2권 p273

과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셀프로라도 나는 불의를 못참는 의로운 자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어쩌면 공지영 작가니까 가능 할 지도 모르겠다.  -좋은 쪽이든 또는 나쁜 쪽이든-


책을 펼치면 챕터가 나오기도 전에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은 허구에 의해 씌어졌다. 만일 당신이 이 소설을 읽으며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사정일 뿐이다." 

사용 설명서 같기도 하고, 경고문 같기도 하고, 누군가를 위한 안전 장치 같기도 하고,

친절하게도 후기 마지막 부분에서 AS까지 잊지 않는다.

어쩌라는 건지, 작가의 익살이 독자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소설은 픽션이다.

그 근저(根低)를 이루는 요인들의 일부분이 논픽션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건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무는 작가의 탁월한 재능때문이다.

그래서 열광하고 극성 팬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연일 수은주의 기록을 경신했던 올 여름만큼이나

출간 전후로 뜨겁게 화제를 만들었던 소설 "해리" 

 

시험 끝나면 봐야지하고 미루던 소설 "해리"를 

시험도 치르기 전-1차는 끝났지만-에 결국 읽고야 말았다.

많은 부분을 익히 접하고 있었기에 감흥은 떨어졌지만 말이다.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있게한 장본인 백진우와 이해리에 대한 생각은 접어 두기로 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는 명명백백히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고 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확신이 생기게 말이다.


사회가 제도가 그리고 선을 추구하는 듯한 우리의 유별난 집단 지성이 

백진우나 이해리 같은 괴물을 잉태시켰다.

집단지성이 아닌 자기 도취적 개인 지성이 맞을런지도 모른다.

자기 도취적 SNS라는 자양분은 괴물을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타는 가짜들 - 어쩌면 그게 진짜 일 수도 있지만-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다.

그들은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희열은 느끼며,

가증스러운 미소로 내일을 묘책하고 있을게다.


명백하게 악을 목격하면 모른척 하지 말랬는데...

선과 악의 울타리 한계가 모호해졌다.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누구에게서나 괴물의 흔적이 읽힌다.

그게 나일 수도 있기에 

그래서 혼란스럽다. 


2018. 10. 21.

공지영  소설 "해리"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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