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정래는 소설 "정글만리" 머릿말에서
우리는 분단 현실 때문에 작가들의 의식에도 울타리가 쳐져 휴전선 이남을 벗어나
다른 곳을 소설 무대로 삼아본 적이 거의 없다.1권 p5 고 말하고 있다.
즉, 체제와 이념은 물론 사람들의 가치관과 환경이 다른 외국 -그것도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주 배경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울리가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동안
마치 내가 상하이와 베이징은 물론 2000년 역사의 古都 시안에서 사회주의 인민들과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게 했다.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 과정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까?
그리고 그 결과물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는 필력과 천상 이야기꾼임에 감탄을 했다.
머릿말에서 처럼 소설의 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는 차별성과 새로운 시도에 대하여
작가의 자긍심이 은연중에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의 종합상사 상하이 현지지사에 근무하는 40대 전대광 부장과 그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제목 "정글"의 느낌은 강렬하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서 먹잇감인 돈의 냄새를 맡고
하이애나처럼 몰려드는 비지니스맨들간의 전쟁은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생존의 경쟁일 수 있다.
어떨 때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이나 규범을 비웃기라도하듯 부정부패와 권모술수가 판치기도 한다.
기업소설을 표방하였다면 전체적으로 무겁게 흐를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인간의 감성에 무게를 실어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다. 결과 역시 해피엔드로 막을 내린다
특별한 사건의 발단이나 반전없이 1,200여페이지의 글이 물 흐릇듯 자연스럽게 읽혀지는데
지나칠 정도의 반복되는 비유적 표현들과 만연체는 작품의 긴장도를 반감시키는 경향도 있다.
또 한가지 무식의 소치지만 단어의 뜻을 몰라 국어사전을 검색해야만 하는 당혹스러움도 생긴다.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을 때는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일인데 유독 우리 소설을 읽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배운 단어중 "객창감(客窓感) : 나그네가 느끼는 쓸쓸한 정서, 여행하면서 느낀 낯설음이나 집에 대한 그리움 등을 통칭하는 낱말"은
소설속의 주인공들이나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자주 느꼈던 생각이라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야기는
1권 첫 타이틀 "깨끗한 돈 더러운 돈"에서 주인공인 전대광의 등장으로 부터 시작되는데
재미있는게 한국화장품들이 없어서 못 팔아 먹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전대광이 말하는 내용이 있다.
2013년 3월 네이버에 정글만리를 연재할 당시 우리나라 화장품업종의 대표 기업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90만원대 였는데
2년된 지금 주가가 3백만원대를 훌쩍 넘어 갔으니 작가의 경제적 통찰력도 대단하다.
중국은 어떤 나라지?
주인공들의 대화 속에서 궁금증은 물론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항상 관심 밖으로 밀려날만큼 중국은 내 인식 속에서 부정적이었는데
한 번 가볼까 하는 솔깃한 생각이 드니 말이다.
전대광이 그의 외조카 송재형에게 질문을 한다. 중국의 문화 전반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형용사 단어가 무엇이냐고.
베이징대 유학생인 송재형이 막힘없이 답변한다 . "크다, 넓다, 많다."라고
중국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이제 그 무한한 잠재력이 표출되어 세계 일등국을 향한 무서운 질주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
인접국가인 우리로서 결코 반길 수만은 없는 현실 일 수도 있다.
작가는 말미에 동북공정과 이어도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중국지도부의 오만과 경박에 기인한 것으로 성급함에 대한 대가는 세계적인 불신과 고립일뿐이라며 낙관적인 여운을 남긴다.
글쎄! 쉽게 예견할 수 없는 모호함만 남는다.
3권 마지막 타이틀 "사랑은 하늘의 힘"에서 송재형이 춘절을 맞아 결혼을 약속한 캠퍼스 커플 리옌링과 함께
바오파후(중국의 신흥부자)가 된 예비 처가 리완상의 집에 인사를 간다.
송재형이 큰절과 함께 중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福과 壽가 새겨진 새빨간 내의를 선물로 내민다.
"여보 사윗감 만점이에요. 당신은 어때요?"
리옌링의 어머니가 내의를 가슴에 싸 안으며 남편을 쳐다 보았다.
"당신 맘이 내 맘이지 뭐."
리완상은 내의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끝> 3권 p405
결혼을 승낙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의 내용이다.
사실 리옌링의 아버지 리완상은 한국을 속국이라 생각하며 한국놈과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다가
승낙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는데 동기의 설명이 미흡하다.
단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 -그것도 거짓으로 꾸며낸 전략- 만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이 없다.
큰 절, 흡족한 선물은 왠지 예전에 속국이 바치는 조공처럼 느껴진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는 나의 엉뚱한 버릇이지만 괜스러이 눈이 가는 대목이 있다.
송재형은 대문으로 들어서며 벌써 기가 질리고 있었다. 그렇게 호화롭고 으리으리한 개인집을 본 일이 없었다.
리옌링이 이렇게 부잣집 딸이었다니...., 송재형은 거부감도 아니고, 거리감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이상야릇하게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며
약한 현기증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비로소 주저하듯 했던 리옌링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기죽지 마. 리옌링만 생각해." 그는 자신에게 회초리질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3권 p402,403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와 함께 향후 방향성을 제시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 과제는 전대광과 같은 우리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튼튼한 토대위에서
송재형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가 풀어나가야만 하는 필연 일 수도 있다.
그들 중국인들의 선문답 같은 말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이다."
2015. 3.
에쿠니 가오리 "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0) | 2016.08.01 |
---|---|
의외로 간단한 :) 최예지 쓰고 찍고 그리다. (1) | 2016.02.03 |
밀란 쿤데라 의 "무의미의 축제" (0) | 2015.02.23 |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 (0) | 2015.02.01 |
에쿠니 가오리 의 "등 뒤의 기억" (1) | 2015.01.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