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어 들자 집사람이 책갈피로 이용하던 명함이 툭하고 떨어진다.
"Restaurante Farol de Santa Luzia"
리스본에서 28번 트랩을 타고 가다 경치가 아름다워 무작정 내렸던 곳,
lg portas sol 근처의 식당명함이다.
지배인이 따라준 와인 향을 음미하며 이른 저녁을 먹었던 기억.
에쿠니가오리 소설을 읽으면서 우연찮게 본질과 벗어난 단어가 또 연상된다.
이누야마 가족이 즐겨 마시던 "와인" , 갑자기 질좋은 와인 맛에 빠져보고 싶었다.
그 언젠가 병실에서 읽었던
"등뒤의 기억" 의 레몬 슬라이스가 동동 떠 있는 콜라가 오버랩된다.
수술 후 물도 먹지 못할 때 콜라 한모금의 간절함..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누군가의 그럴싸한 삶의 처방이 묻어나는 명언같기도 하고,
잘살아보자는 캠페인 구호 같기도 하다.
장소는 기억 못하지만
여행지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던 "바르게 살자"는 돌비석 내용이 생뚱맞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이 동네는 손씻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가?
그동안 관심밖이라 무심코 흘렸겠지만
그 이후로 이 문귀가 있는 비석은 여러 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흔하게 눈에 띄었다.
좋은 글인데 행간의 깊이를 이해 못한 나의 무지가 그 글을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했을게다.
어쨋튼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는 명언도 캠페인 구호도 아닌
에쿠니가오리의 2016년 신작소설 제목이다.
김난주 옮김, 소담
이누야마 집안에는 가훈이 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니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
그 가훈을 자매는 각각의 방식으로 신조 삼았다. -본문중에서-
이 책의 제목 근간을 이루는 내용인데 이를 모토로 살아가는
이누야마 집안의 세자매 아사코, 하루코, 이쿠코의 이야기다.
세자매의 성격은
얼마전 jtbc 뉴스룸에 초청되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5년도 작품
"바닷마을 다이어리" 세자매의 성격과 닮아 있는 듯도 했다.
물론 그 영화에서 처럼 따뜻함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은 특히 긴장할 내용도 없는데 자꾸 다음장을 들추게 만들며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남편의 폭력에 멍들고 피폐해지면서도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드리려는
큰언니 아사코의 답답함 때문이었다.
성질 급한 내가 숨이 넘어간다.
가정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갔으면 싶은데
그게 그리 어려운가? 걸림돌이 되는 자식도 없으면서....
결혼 7년차 36살의 젊음이 마음 아플뿐이었다.
가정에서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지는 폭력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양산한다.
결국 아사코는 남편의 흉기를 빼앗아 자해를 함으로서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 나올 수 잇는 계기를 만든다.
아사코는 가족들이 모여 있는 병원 침상에 누워 혼자말을 계속한다.
"구니카즈 씨가 아니라. 내가 구니카즈 씨를 찌를까봐. 까탁하면 찌를 것 같았어.
하마터면 찌를 뻔했고."
웃고 있나 싶었는데,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제 됐으니까 그만 말하고 자." 하루코가 말했다.
아사코는 다시 한 번 "무서웠어"하고 말했다.
예뻤는데
기시 마사아키와 손을 잡은 채, 이쿠코는 슬픈 심정으로 언니를 보았다.
동생 눈에도 아사코 언니는 예쁜 여자였는데, 지금은 전혀 예쁘지 않다.
지치고 일그러진 얼굴에, 몸 전체가 조그맣고 딱딱하게 쪼그라든 것 같다. -본문중에서-
이 책은 사실 아사코보다
둘째 하루코 비중이 크던가, 아니면 셋째 이쿠코의 비중이 더 클 수도 있다.
가정 폭력이 내용의 주류는 결코 아니다.
단지, 내가 그 쪽에 관심이 더 가기 때문에 본질을 흐려 놨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끈이 이어주는 따뜻한 기억을 매체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세자매의 가치관을 행간으로 읽어야 할게다.
어쨋튼 결론이 나쁘지 않아 좋다.
살아가는 방식들은 다르겠지만
첫째 아사코는 2번가로 돌아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갈 테고
둘째 하루코는 여전히 커리우먼으로의 당당함을 잃지 않을테고
4차원적 성격 막내 이쿠코의 따뜻한 심성은 가족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계속할테고...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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