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이영미 올김, 문학동네-
후기에서 작가는 최근 이십여 년간 방문했던 세계 여러곳에 대해 몇몇 잡지에 실었던 글을 한데 모은 책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곤 한마디를 덧붙인다.
한데 모은 글을 새삼 다시 읽어보자 여기 실린 것들 말고도 재미있는 여행, 인상에 남는 여행이 많았는데
글로 남겨놓지 못한걸 후회한다고...
사실 작가의 필력이라면 기억을 더듬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이지만-
다른 글도 아니고 여행기는, 여행 직후에 마음먹고 쓰지 않으면 좀처럼 그 생생함을 살릴 수 없다는 말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책에는 대부분 특정 도시에 포커스를 맞춘 열편의 여행기가 나온다.
찰스 강변의 오솔길.... 보스턴1
푸른 이끼와 온천이 있는 곳... 아이슬란드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 메인 주 포틀랜드
그리운 두 섬에서 ... 미코노스 섬, 스페체스 섬
타임머신이 있다면 ... 뉴옥의 재즈 클럽
시벨리우스와 카우리스매키를 찾아서 ... 핀란드
거대한 메콩 강가에서 ... 루앙프라방(라오스)
야구와 고래와 도넛 ... 보스턴2
하얀 길과 붉은 와인 ... 토스카나(이탈리아)
소세키에서 구마몬까지 ... 구마모토(일본)
보스톤이 2편 국가로는 미국이 4편이나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책의 제목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로 정한 이유를 설명히고 있다.
작가가 라오스로 가기 위해 들른 경유지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베트남에는 없고 라오스에 있는 것이 대체 뭐냐는 질문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정말 라오스에 뭐가 있다는 걸까? 자문을 하면서도
막상 가보니 라오스에는 라오스에만 있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면, 아무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여행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피력하고 있다.
알랭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의 기대에 대한 내용중에
<"바베이도스는 캐러비안에 위치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휴양섬이다.
누구에게나 행복감을 줄 것 같은 이 섬의 방문도 아주 사소한 변수로 인해 기대감을 충족 시켜주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날씨, 동행자와의 사소한 신경전, 현지 상인의 바가지 등등...
JK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는 이러한 현실의 여행이 가져다줄 수 있는 실패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데제생트 백작을 소개한다.
데제생트는 런던에 가기보다는 영국인이 자주 찾는 집 근처의 포도 주점이나 영국식 선술집을 방문한다.
그의 이러한 여행이 실제로 런던의 헤머스미스를 방문하는 것보다 실패의 확률을 줄이고
오히려 최초의 목적을 좀 더 근접하게 달성하는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더 나은 대체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듯도 하다.
정보의 바다에 빠져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은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제공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여행을 갈 필요가 없나?
작가는 다시 "몇 번 가본 곳이라도 갈 때마다 '오오, 이런게 있었다니!'하는 놀라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행입니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루앙프라방을 여행하면서 다른 여행지와는 달리 많은 사고와 성찰을 하게되는데 그이유가
" 아마도 시간이 남아 돌아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 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여행지마다의 독특함이 있을텐데 루앙프라방에서의 그 독특함은 오감까지 건드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새벽잠을 설쳐가며 카오냐오를 준비해 탁발 의식에 참여했던 생각이 난다.
검푸른 빛이 채가시지도 않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승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시간은
경건함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여유로움과 느긋함도 함께 공존하는..
작가의 핀란드 편에서 마지막 부분이 또 압권이다.
"[덧붙이며] 나는 '색채가 없는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장면들을
모두 상상으로 쓰고 난 뒤에야 이 핀란드 취재를 떠났습니다. 마치 나 자신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더듬어 가듯이,
그런면에서 흥미로운 여행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쓰쿠루의 핀란드 내용은 백여페이지나 되는데 그게 상상이라니...
오래전에 읽던 책을 다시 들쳐 보았는데 생각만큼 도시에 대한 묘사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으로 썼다는 부분에서 데제생트 백작 -작가 JK 위스망스의 견해겠지만-의 여행관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생긴다.
어쨋튼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박한 지식과 필력에 감탄할 뿐이다.
이 책은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 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로 끝을 맺는다.
여행은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마저도 마음을 설레게한다.
어쩌면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다녀온 사람보다 더 많이 챙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만 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것은 가보지 않고 알 수 없는 여행자만의 진정한 몫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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