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예약할 때 출발 30분전 까지 오라고 해서 7시30분경 신투어리스트에 도착해
예약시 받은 영수증으로 접수를 했다.
투어 버스는 45인승 대형 버스였는데 좌석까지 지정이 되어 있었고
공교롭게도 관광객중 절반정도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타이거우즈와 비슷하게 생긴 젊은 가이드가 인사를 하면서
이 버스는 캄보디아로 가는 거라며 농담을 하곤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일정은 구찌터널을 관광한 후 1시쯤 돌아와서 2시부터 시내 관광을 하는 건데
나는 꾸찌 반나절 투어만 신청을 했다.
꾸찌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이상 걸렸고 안에 들어가서 관광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관광이 끝나고 처음 출발했던 신투어리스트로 돌아오니 스케줄보다 다소 늦은 1시30분쯤 되었다.
이어서 2시부터 시내투어를 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2시10분까지 오라고
가이드가 안내를 하는데 대부분 관광객들이 1일투어를 신청한 것 같았다.
호찌민 시에서 북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꾸찌터널은 프랑스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졌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반대하였던 베트남인들이 게릴라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처음이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상대적으로 모든것이 열세인 베트남군은 미군과의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꾸찌터널을 이용하였다.
꾸찌는 호찌민에서 불과 30Km 정도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미군을 상대로 적지에서 산발적인 게릴라 전술을 펼치기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꾸찌터널의 총 길이는 200km가 넘었고 깊이는 지하 3m~8m까지 만들어져 있다.
한창때 이 땅꿀망은 호찌민시에서 캄보디아 국경까지 뻗어 나갔다고 한다.
내부에는 여러층과 방들이 만들어져 있고 3층구조로 넓게 만들어진 공간도 있다.
터널의 통로는 세로 약 80cm 가로 50cm로 좁고 협소하여 이동하기에 불편하지만 체구가 작은 베트남인 들에게는 견디만한 공간이었으며,
덩치가 큰 미군들은 접근조차 힘들었다고 전한다.
터널의 입구는 나뭇잎 등으로 정교하게 위장이 되어있어 외부에서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 터널의 규모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터널위에 미군 기지가 있었으나 미군들은 터널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나중에 터널이 발견되어 이를 소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입구 몇곳을 찾아 파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 터널중 일부가 복원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당시 그들은 생존을 위한 혹독한 인고 속에서 땅굴을 파고 그 안에서 생활을 했을텐데
지금은 관광용으로 전락된게 왠지 씁씁함을 자아낸다.
현재 Ben Duoc와 Ben Dinh 2개 지역만 관광을 할 수 있는데 여행사를 통해서 가면 Ben Dinh 지역을 간다.
꾸찌터널에 전시된 1970년 작전중 파괴된 미군 탱크
2014. 11.
매표소 입구의 모습
입장료는 20,000동 , 봉사료 70,000동 총 90,000동인데인데 버스에서 가이드가 돈을 걷어 단체로 입장권을 끊는다.
초입에 있는 기념품가게
터널처럼 생긴 통로 중간쯤에서 입장권 검사를 한다.
미군이 퍼부은 폭탄 탄피를 이용해 무기나 각종 생활용품을 만드는 모습. 땅굴 내에는 용도에 맞게 다양한 방이 있었다고 한다.
왼 쪽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람이 타이거우즈처럼 생긴 가이드다.
라이스 페이퍼 만드는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데 열기를 견디며 작업하는 게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폐타이어로 신발을 만드는 모습
개미집처럼 위장된 공기 구멍. 공기 구멍은 수색대에 발견되지 않으면서도 물이 스며들지 않아야 했기 때문에 갖가지 방법으로 위장되었다.
지하 식당의 모습
그 당시 군인들이 주식처럼 먹었던 카사바 뿌리 -고구마와 비슷한데 땅콩가루가 섞인 소금에 찍어 먹음- 와 차를 제공한다.
터널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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