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던 데탐거리에서 호찌민 전쟁유물박물관까지는 2km정도의 거리였다.
늦은 오후 가방을 메기도 귀찮고 해서 카메라도 없이 휴대폰만 달랑들고 찾아갔는데 의외로 찍을 것이 많았던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입장료는 15,000동인데
오픈 시간이 오전에는 7시30분에서 12시까지, 오후에는 1시30분부터 5시까지였다.
내가 들어간 시간이 4시20분경이었는데 4시45분이 되니까 문을 닫는다는 안내방송이 나와 그나마도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3층의 공간에 다양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흑백사진들이 전시된 1층 전시공간은 가슴 뭉클하고 숙연함까지 들게했다.
사진 속에 있는 그들의 밝은 표정들 그리고 서로 도우면서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삶의 모습에는 희망이 있었다.
전쟁으로부터의 아픈 상흔에 대한 원망, 좌절이 아닌 용서와 반면교사를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한국군에 대한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2개 정도 게시된 액자 속의 숫자들을 통하여 역사의 한장을 다시한번 기억해낼 뿐이었다.
"1964년8월19일에서 1973년 3월22일까지 328,000여명이 파병되었고 피크 때인 1968년에는 50,000여명이 주둔했다.
이 기간중 전사자 5,000여명,부상자 11,000여명 이상, 그리고 한국 베트남 혼열아 1만여명이 발생했다."
호찌민 전쟁유물박물관
2014. 11.
박물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미군 전리품들
1층에 전시되어 있던 사진들중의 하나 " A Dream"
유독 파괴된 성당을 보여주는 건 의도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유명한 1972년 6월 베트남에서 네이팜탄 폭격 당시 AP통신 사진기자 닉 우트가 촬영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탄 이른바 '네이팜탄 소녀'
닉 우트는 벌거숭이 소녀를 촬영한 뒤에야 이 소녀가 화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깨닫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 소녀를 살렸다고 한다.
이 한장의 사진은 전쟁의 참혹함을 증언했고 소녀는 자라서 처참했던 전쟁의 역사를 증언했는데
닉 우트가 찍은 이 사진은 베트남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데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한국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2개의 게시물
어린시절 이들이 최고인양 자랑스럽게 불렀댔던 노래 속의 청룡,백마,맹호부대 그리고 또 기억나는 십자성부대까지
냉전시대가 만들어냈던 아픈 흔적들이다.
박물관 옆으로는 누군가의(?) 만행을 보여주는 포로수용소가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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