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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18일차 (레온~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산티아고순례길

by 僞惡者 2016. 7. 1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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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새벽의 도심을 걷는 것도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다.

아직 도시를 감싸고 있는 파르스름한 기운과 

도로에 투영되는 불 빛들도 운치 있고

얼굴에 와 닿는 감촉도 상큼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감성에 젖어 보는 것,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굵어지는 빗방울

점점 더 거세지는 차디찬 바람

5월 중순을 무색케 할 정도로 급강하 하는 기온,

몇백년 아니 그 이 전 부터 

순례자들에의해 수없이 다져졌을법한 길은 진흙 구덩이로 변해 

발디딜 조금의 자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 비를 맞아가며 왜 걷고 있지?

약속된 것도, 기다려 줄 그 무언가도 없는데...

오늘 걸어야만 하는 명쾌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보름 이상 반복되어지면서 걷는데에만 익숙해진 사이보그가 된 건 아닐까?

멈추면 안된다는, 나 스스로 통제 할 수 없는 명령어가  입력된 듯하다.

일상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파 시작한 카미노가 

또 다른 형태로 나를 구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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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18일차는 레온(Leon)에서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까지 33.5km를 걸었다.

 

2016. 5. 12.

 

5유로에 침대는 물론 아침까지 제공해 준 숙소에 감사드리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6시50분, 기온은 8도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 배낭에 커버를 씌웠다.

 

 

 

 

신발까지 벗고 앉아 있는 순례자 동상인데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할런지, 오늘 같은 날이면 야속한 비 때문에 하늘에 원망이라도 하는걸까?

그 보다는 지친 심신을 쉬면서 무상무념에 빠져 있는게 맞을 것 같다.

 

구 시가지를 완전히 벗어난 또 다른 풍경, 붉은색 건물들과 서있는 빨간 차가 일체감이 있다.

 

레온 시내를 빠져 나오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

중간에 주유소에서 운영하는 소형 마켓에 들려 판초 우의를 챙겨 입었다.  

그리곤 술이라도 먹으면 덜 추우려니 하는 생각으로 캔맥주를 마셨는데 착오였다. 온 몸이 덜덜덜 떨렀다.

라 비르헨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 7.3km, 8:20 )

 

마을을 벗어나면서 부터는 자동차 도로 옆으로 언덕 위에 길이 있는데 진흙창이었다.

퍼붓는 비를 신경 쓰며  그래도 신발이 덜 빠질 것 같은 곳에 발을 내딛느라 사진 찍을 엄두도 못내다

그래도 조금 양호한 길에서 인증샷을 날린다. -양호한 길이 이 모양이다.-

어떤 여자 순례자가 되돌아 나오길래 이유를 물어봤더니 택시를 불렀단다. 

걷기를 포기할만큼 최악의 조건이었다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 마을에 도착했다. (12km, 09:10) 

산타 엔그라시아 성당인데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종탑 위에는 새들의 둥지가 보인다.

걷기 편한 자동차 전용도로와 순례자 도로를 번갈아 가며 걷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편하게 자동차 전용도로 갓 길을 걷다가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서 일으킨 바람에 모자가 날라갔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빗 속에서 한참을 헤매며 찾았는데 50여m이상 날라간 것을 발견하게 다행이었다.

비야당 고스 델 파라모 마을에 도착했다. (21.5km, 11:00)

이 마을에는 긴 장대 위에 인형을 올려 놓았는데 사람은 아닌 듯도 하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까마귀 서식처였다.

비오는 하늘 위로 까마귀들이 소리를 내며 날라 다니는데 좋은 느낌은 들지가 않았다.

 

 

이 건물 처마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비바람도 피하며 언 몸을 녹였다.

배낭 속에 있던 바나나를 꺼내 먹는데 먹는 것 자체도 곤욕이었다. 기온은 더 떨어져 5도까지 내려갔다.

자동차 도로 옆으로 난 비포장 길을 걸어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 26km, 12:15)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식사를 끝내고 나오니 비는 그쳐 있었다.

날씨도 개이는 것 같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고생했던 것은 어느새 다 잊혀진 듯 또 걸으려는 생각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 간다. 나는 간다. 어느 유행가 가사의 비슷한 구절이 떠올랐다.

 

도로 옆 비포장 길은 가끔씩 숲 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주변의 대부분 풍경은 넓은 평원 지대였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에 들어섰다. 이 곳에서 구 시가지가 있는 마을 까지는 긴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갑자기 나타난 소 떼로 인해 길 옆으로 비켜서야만 했다.

소 떼들 뒤에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농부의 모습.

 

명예로운 걸음의 다리라고 한다.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세워진 지 얼마안 된 것처럼 보였다.

다리 건너 보이는 구시가지도 새로 조성된 마을처럼 깨끗하다.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마을은 또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오늘 힘들었던 몸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쉬기 위해 이 동네에서 가장 비싼 사립 알베르게를 찾았다.

Albergue La Encina 로 1 room에 욕실이 딸린 2층 침대 2개가 있는 4인실이었다. (bed 10유로, 저녁 10유로)

 

 

마을 전체 분위기가 정감이 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오늘 힘들었던 순례길을 보상해 주려고 이 마을을 선택하게 하셨나보다.

내 불평불만과 짜증섞인 푸념이 듣기 싫으셨는가보다.

서녘으로 서서이 기울어 진 빛이 파스텔톤 이 마을과 궁합을 이룬다.

옅은 하늘색도 한 몫을 거둔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걸으면서 마을 골목, 골목을 돌아 다녔다. 

 

 

 

 

 

 

 

 

 

 

 

 

세례자 요한 성당의 모습이다.

 

 

 

 

성당 뒷 편 조그만 14처도 인상적이다.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맨 위의 그림은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글을 쓰시는 장면 같기도 같고

별관처럼 보이는 곳에는 성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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