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이 생각나는 하루다.
첫 출발은 좋았다.
숲 속에서 사슴과 눈이 마주쳤을 때 예전에 보았던 영화 디어헌터가 생각났다.
조준경에 사슴이 들어 왔을 때 방아쇠를 못당기던 주인공
그 사이 사슴은 사정거리에서 멀찌감치 달아난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던 모습, 반전 영화의 대표작중 하나일거다.
나를 본 사슴 역시 놀랐는지 껑충껑충 뛰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사라지는 사슴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과 닮아 있는 듯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숲속길은 고요하고 신비롭다.
그런데 첫번째 동네를 통과한 후부터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가 온 여파로 산길은 진흙창에다 도랑으로 변한 곳도 많았다.
안개비는 계속 내렸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부는 칼바람에 손은 꽁꽁 얼고 운무는 시야를 가렸다.
방한 준비가 거의 안된 상태니 이러다 저체온증으로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굽으니까 배낭을 열고 있는 것들을 끌어내 챙겨 입기도 힘들었다.
또 따뜻하게 보온을 해 줄 만한 옷도 없었고....
사실 이 지역도 이상 기온이란다.
5월중순이면 20도는 되야 하는데 저온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기사 여기뿐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이상 기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그렇게 1,500미터 능선을 넘었다.
힘들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금새 잊혀지나보다.
오늘 머물기로 한 마지막 동네를 내려오는 6km의 숲 속 오솔길은 봄이 만개시킨 꽃밭 길이었다.
온 산이 하얗게 물들었고
길가에 피어 있는 빨강, 노랑, 분홍, 파랑, 보라...등 형형색색 꽃들의 아름다운 잔상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오늘 밤 꿈 속에서 나는 무지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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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20일차는 엘간소(El Ganso)에서 몰리나세카(Molinaseca)까지 33.5km를 걸었다.
2016. 5. 14.
알베르게, 성당 종탑, 가로등에서 뿜어 나오는 노란 불 빛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6시45분이다.
몇 백미터 앞에 나보다 빨리 숙소를 빠져 나온 순례자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문득 제주도의 옛날 대문 정낭을 연상 시킨다.
뭐가 그리 아쉬운 지 또 내가 머물렀던 마을을 되 돌아본다.
엘간소에서 라바날 델 카미노까지 순례자길은 비 때문에 물이 고인 곳이 많아 편하게 아스팔트 길을 걷기도 했지만
평행으로 가던 순례자길이 도로로 부터 멀어지면 길 상태가 안좋아도 순례자길을 택해야했다.
라바날 델 카미노 마을은 내가 머물렀던 엘간소보다는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7km, 08:00)
마을에 있는 성모승천성당을 통과 한다.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다.
폰세바돈 마을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시야는 흐리다. (12.5km, 09:20)
1,400m가 넘는 지역이다. 기온은 8도로 나오는데 체감으로 느끼는 기온은 얼마나 될런지...
여하튼 나는 엄청 춥게 느껴졌다.
알베르게와 카페를 함께하는 곳이다.
앞 뒤 안가리고 무조건 들어갔다. 안에는 순례자들로 혼잡하다.
1유로를 내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언 몸을 추수렸다.
철의 십자가가 있는 곳은 1,490m정도로 이 언덕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15km, 10:00)
중세시대 순례자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이 곳에 봉헌 했다고 한다.
날씨가 좋았다면 선명하게 보였겠지만, 안개 속에서의 흐릿한 자태가 더 신비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십자가 앞에서 순례자들은 경건해진다.
순례자들이 매달아 놓은 물건 중에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도 보인다.
하루빨리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최선책이 나오길 기도해 본다.
철십자가 뒷 편 쪽에는 조그만 성당이 있는데 대피소 역할도 가능할 것 같다.
만하린 마을 도로변에 있던 알베르게의 모습이다. (17km, 10:38)
순례자들 눈에 잘 띄는 길가 나무에는 택시 전화번호 광고가 많이 붙어 있다.
언덕 위까지 도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비로 인해 상태가 안좋은 카미노를 고집하지 말고
포장된 도로로 내려와도 될 성 싶다.
하지만 많은 순례자들이 험난한 길을 마다 하지 않는 것도 카미노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 중턱에 있는 엘 아세보 마을에 도착했다. (24km, 12:20)
이 곳은 관광지 같은 느낌이 든다. 초입부터 식당은 물론 숙박시설로 알베르게는 물론 호텔까지 있다.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 마을인데 무니시팔 알베르게도 있다. (27.5km, 13:30)
리에고 데 암브로스 마을을 빠져 나오자마자 숲속길로 이어지는데 경사도 급하고 돌길도 많다.
멀리 몰리나세카 마을이 보인다. (14:15)
산에서 내려와 도로를 따라 마을 쪽으로 오른 쪽에 있는 안구스티아스 성모 성소다. 내부는 잠겨 있었다.
로마시대때 만들어 진 다리라고 하는데 고풍스럽다.
이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 도로와 바로 연결된다.
구시가지 안에 있는 산 니콜라스 데 바리 교구 성당인데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순례자 동상과 일본 법인 기념비(?)의 상관관계가 무엇일까?
Santa Marina 알베르게다. 시설은 깨끗하고 좋았다. (bed 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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