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에는 집주인이 찍은 흑백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중 주인공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 것은 바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듯한 섬을 찍은 사진이다.
그의 내면에서 섬은 심하게 요동쳤고 위험까지 내포한 불김함으로 다가오는 듯 보였다.
사진 속의 섬을 찾아가면서 차도와 인도가 함께 있는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 어둠 저편의 빛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비상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섬에서 한때 시를 썼다는 백수와 자폐증 아가씨에게 어떤 일이 일어 났는지 알 수는 없다.
단, 두사람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겐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았던 자폐증 23살 아가씨만이라도
충격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를.....
러닝타임 121분, 짧지 않은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무겁다. 그런데 그 묵직함에서 건져낸 것이 뭐였지?
한 때 시인이였다는 백수 윤영(박해일 분)과
선배의 부인이었던, 그래서 윤영이 형수라고 불렀던 이혼녀 송현(문소리 분)에게 열심히 끌려 다녔는데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고, 공감할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면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더 비정상적 사고를 가져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들 주변을 둘러싸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배경적 요인들을 건져 올려 짜맞추기를 해본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장소로 서울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이 용산이 아닐까 싶다.
한 때 건축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윤영의 아버지는 빨간명찰을 자랑하며
용산해병전우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아버지 지인에게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살아계신 아버지를 고인으로 만들고 있는 윤영의 돌출적 행동,
군산을 다녀와선 아버지가 계신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사무실로 과일을 사들고 찾아가는 모습 역시 즉흥적이다.
윤영-정확히는 윤영 아버지(명계남 분)-의 집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정부는 윤동주시인과 먼 친족 관계다.
왜색짙은 군산의 관광지에서 찾아간 민박집 역시 일본식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목조 건물이다.
민박집을 운영하는 사장(정진영 분)과 자폐증 딸(박소단 분)은 재일교포로 후쿠오카 출신이다.
윤동주는 북간도 출신이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조선족일게다. -조선족에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후쿠오카는 윤동주시인이 29세의 나이로 아까운 생을 마친 후쿠오카형무소가 있는 곳이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심점에 윤동주 시인이 있다.
꿈을 접어야 했던 아쉬움을 날지 못하는 거위의 노래로 대변하려 했을까?
군산 역시 과거의 영욕에 가두어진 상징적 의미로 선택되어진 듯 하다.
영화는 썸이라도 타고 싶었던 남녀가 군산에 도착한 후 군산관광안내도를 바라보며 시작된다.
송현의 첫마디는 '미친것 같애' 다. 내가 보기엔 그들의 서울에서 행동들 역시 정상에서 빗나가 있는 듯 했다.
윤영이 다시 서울로 돌아 온 이후에도 그의 언행은 사람들을 피하게 만든다.
송현의 사촌언니인 치과의사 (이미숙 분)의 말처럼 미친놈일 수도 있다.
자기만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병적인 에고이즘일 수도 있다.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咏鵝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타이틀이 나온다.
배경은 송현의 사촌언니가 운영하는 치과 치료실이다.
윤영이 보고 싶어하던 멀리 남산이 보이는서울의 야경이 창문을 통해 펼쳐진다.
끝나는줄 알았던 영화가 다시 시작된다.
윤영과 송현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과거로 시점은 되돌려 진다.
윤동주가 연변에 살아 있었다면 조선족이었을, 그들 조선족에 대한 이민법 차별 반대 집회장소에서의 조우다.
남자는 여자를 힘들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며 부정적 사고가 더많은 돌싱 송현과
허무와 냉소가 뒤섞여 사회를 바라보는 무기력한 윤영의 만남에서 생산적 삶을 기대하긴 무리인 듯 싶다..
그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었던 곳일 수도 있는 군산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는 거울을 통한 이면 촬영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 거울을 통해 그들의 무력한 자화상을 재확인하는데 그쳤을게다.
윤영은 왜 갑자기 군산을 가고 싶었을까?
영아라고 불러주던 10여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 어머니 고향인 군산을 택했을까?
정체성도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듯한 군상들의 모습을 군산에서 찾으려 하는
감독의 의도를 헤아려 본다.
2018년 부산 국제영화제 출품작
장률감독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201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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