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가 올라와 지붕을 덮은 마을마다 백일홍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은 아이를 죽여 그 고기를 먹었다.(1권 P20)
포로로 잡힌 조선 백성들이 적장의 가마를 메었고 총포와 말먹이를 실은 수레를 끌었다.
붙잡힌 조선 계집들이 적장들의 가마에 일신을 바쳤고 조선 백성 풍물패들이 이동하는
적의 대열 맨 앞에서 풍악을 울렸다.
적들은 이기고 돌아가는 개선의 대열처럼 풍악을 앞세우고 후퇴했다.
길에서 쓰러진 조선 계집과 포로들은 마차바퀴로 뭉개버리고
적들은 또 다른 고을의 조선 백성들을 끌어갔다.
적들이 지나간 마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적의 말똥에 섞여나온
곡식 낟알을 꼬챙이로 찍어 먹었다. 아이들이 말똥에 몰려들었는데,
힘없는 아이들은 뒤로 밀쳐져서 울었다.
사직은 종묘 제단 위에 있었고 조정은 어디에도 없었다.(1권 P148)
명의 수군은 동작나루까지 마중나온 조선 임금으로 부터 통곡을 앞세운 애끓는 환영을 받았다.
그때 동작나루에서 명 수군 총병관 진린은 조선의 하급관리 한 명을 붙잡아 목에 노끈을 묶어서
끌고 다녔다. 피투성이가 된 조선 관리는 네 굽으로 기면서 개처럼 끌려 다녔다.
임금은 외면했다.
조선 중신들이 역관을 보내 만류했으나 진린은 듣지 않았다,
그 하급 관리는 마포나루에 파견된 영접 실무자였는데,
전린이 나루에서 뭍으로 오를 때 신발이 물에 젖었다는 것이었다. (2권 P24,25)
힘없는 나라의 민초들이 겪어야만 했던 참담함에 가슴이 아리다.
배고파서 죽고, 역병으로 죽고, 탈영하다 죽고, 적과 싸우다 죽고,
심지어 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방패막이는 같은 민족에게 죽고
겁탈당한 아녀자는 목메달아 죽고, 이리 죽고, 저리 죽고.... 명분없이 참 많이도 죽었다.
그도 아니면 일본까지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의주까지 도망간 나약한 군주, 명분과 정쟁의 틀에 갇혀버린 위정자들,
정치적 실리에 주판알을 튕기는 주변 강대국들,
진정 민초들이 기댈 곳은 어디란 말인가?
420년이 지난 오늘에도 많은 사건들이 놀랄만큼 유사한 형태로 답습되고 있다.
이 시대에 걸맞는 진정한 영웅을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가?
소설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칼에 새겼다는 검명(劒名)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一揮掃蕩 血染山河) (2권 P20)
장군이 적의 피로 남쪽 바다를 물들이고 싶었던 것 처럼
이 시대의 영웅은 의(義)로움으로 우리 사회를 물들이길 염원해 본다.
난전은 계속중이었다.
싸움의 뒤 쪽 아득한 바다 위에서 노을에 어둠이 스미고 있었다. (2권 P195)
2019년을 살아가는 지금도 난전은 계속중인데
그 어둠의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겠다.
투옥된지 28일만에 풀려나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을 시작하는
1597년(선조30) 4월1일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는1598년 11월19일까지의 이야기다.
난세의 영웅 이순신을 1인칭 화법으로 꾸려나간
김훈 작가 "칼의 노래" (2001년, 생각의 나무)를 참 일찍도 접해 본다.
표지에 있는 글 귀 "이순신 -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한(限)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김훈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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