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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천주교 성지 4> 관덕정(觀德亭)

천주교성지,성당방문등

by 僞惡者 2019. 12. 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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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제주교구에서 관덕정(觀德亭)을 성지로 지정한 이유는 신축교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01년 신축교안 때 관덕정 등지에서 교우를 포함한 양민 700여명이 피살되었는데
관덕정 정자 앞 광장은  사형장을 방불케했다 한다.
광장에 널려 있던 시신들은 별도봉과 화북천 사이에 옮겨져 버려지듯 가매장 된 상태로 있었는데
그 중 연고가 있는 분묘는 이장해 갔고 무연고 시신들은 
1903년 조정으로부터 매장할 자리로 황사평을 이양받아 이장하게 되었다.

 

관덕정 성지스템프는 인근(300여미터) 제주 중앙 주교좌 성당에 있다.

신축교안(辛丑敎案)  일명 "이재수의 난"
  제주도에 천주교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지 2년밖에 안되는 1901년 제주도에서는
교회와 주민 사이의 충돌 사건이 발생하여 대부분 무고한 천주교 교우 수백명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민군(장두 이재수)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사건의 원인은 제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징수의 폐단 시정이 목표였으나, 
천주교의 선교에 불만을 가진 토착세력(향임과 상인측)과 토속신앙(무당들)의 사주를 받은 세력간의 
우발적인 사건으로 교민과 민군측이 충돌하는 사건으로 전개되었다.
봉세관(捧稅官)과 천주교 세력의 횡포에 대항해 일으킨 민중봉기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최근 천주교도  "과거 교회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강점을 위한 치열한 각축의 시기에 
선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주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잘못을 사과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축교안은 구한말 제주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1901년 신축교안은 물론 제주 4.3사건도 1947년3월1일 관덕정 광장에 울린 총성에서부터 시작된 걸 생각하면
광장에 서려있는 제주도민 한의 깊이를 헤아리기가 결코 쉽지 않을성 싶다.

관덕정
2019. 11. 20.

관덕정에서 바라본 제주목 관아 입구

관덕정 양편에 있는 돌하르방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1, 2-2호로
원래 제주읍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옹중석, 우석목, 벅수머리등으로 불리는 돌하르방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석상이다.
총 48개가 세워졌다 하는데 현재는 관덕정등 제주도에 45기가 남아 있다.
제주읍성 남문 밖에 있던 1기는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분실되었고,
동문 밖에 있던 2기는 국립민속박물관 입구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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