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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천주교 성지 7>황경한의 묘

천주교성지,성당방문등

by 僞惡者 2019. 12. 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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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천주교 신자도 아닌 황경한의 묘가 천주교 성지 순례지로 지정되어야 하는 지 의문을 가져 본다.
물론 신심이 깊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 못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추자도에서 황경한의 삶은 어떠했을까? 내가 못찾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없다.
안내문에 적혀 있는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걸었던 애초리 포구, .....', '애절한 삶'은 
신파조적인 감성까지 묻어 난다. 너무 주관적이다. 

서너군데 있는 안내문도 일관성 있게 통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예를 들어 아기의 발견자도 '어부 오상선', '어부 오씨', '오재일의 고조', '뱃사공 오씨 부인'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고, 놓였던 위치 역시 동일 장소겠지만 어수선 하다.

각설하고 
'황경한은 백서(帛書)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 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이다.
1801년 정난주 마리아는 두살배기 아들과 제주 유배중 호송선이 추자도 예초리에 머물자 
몰래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아들과 함께 저고리에 싸서 갯바위에 두고 떠났는데 어부 오씨에게 발견되었다.
황경한은 이곳에서 성장한 뒤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고 지금 그의 후손들이 하추자도에 살고 있다.'가 요지다.

구약성서 탈출기 모세의 탄생(2.1~10)이 생각난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라는 파라오의 명령이 떨어졌던 시기에 태어난 아기,
어머니는 왕골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나무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숲 속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파라오의 딸이 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아기를 보고 불쌍히 여겨 키우고자 했다.
숨어서 이 광경을 보던 아기의 누나 미리암이 공주에게 나타나 공주 대신 젖을 먹일 여인을 데려오겠다고 제안을 한다.
미리암이 데려 온 여인은 사실 그녀의 어머니이자 아기의 어미였는데 
공주는 삯을 주기로 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여 주게 한다.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고 아이가 자라자 공주에게 데려간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물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합리적인 추측이지만 모세의 어머니나 누이처럼 정난주 마리아도 갯바위에 놓아둔 아기가 
누군가가 의해 발견되는 것을 확인한 후 안도하며 추자도를 떠나지 않았을까? 
물론 누군가와 사전에 연락이 있었을 것이고.

아들이 평생 관노로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생사도 확인하지 않은채
-물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간절한 기도야 계속해서 드리고 또 드렸겠지만-
갯바위에 아이를 놓고 떠났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 무책임하고 비정한 모정은 일반적인 상식에선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상황을 신자의 입장에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것인가? 

성지 순례지에서 불경(不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던 
제주교구 천주교 성지중 마지막, 일곱번째로 찾은 추자도 '황경한의 묘'에서의 단상이다.
  
황경한(黃景漢)의 묘
2019. 11. 21.

상추자도 여객터미널 앞에서 11시에 출발한 마을 공영버스는 20분 정도후 모진이 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2stop을 더가면 종점인 예초리 마을이다.
황경한의 묘 순례 코스는 모진이 해수욕장에서 내려  황경환의 묘 , 황경한의 눈물, 눈물의 십자가를 들린 후
예초리 마을로 내려오는게 최적인 것 같다. 

모진이 해수욕장 입구 버스 정류소의 모습니다.

버스정류소에서 예초리마을 방향쪽으로는 보이는 작은 카페 

모진이 해수욕장 입구

모진이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우측으로 끼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황경한 묘까지는 900여 미터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모진이 해수욕장

묘주변은 성역공원화 사업으로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황경한의 묘 앞쪽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 '모정의 쉼터'가 있다.

모정의 쉼터 옆에 있는 눈물의 십자가 안내판 뒷 편으로 멀리  눈물의 십자가가 보인다. 
안내판에는 추자공소 가는 방법도 적혀 있는데 순례스탬프는 공소에 비치되어 있다.

황경한묘에서 100여미터 내려가면  '황경한의 눈물' 이라는작은 샘이 있다.

 

눈물의 십자가로 가려면 '황경한 눈물'에서 언덕을 내려 갔다가 다시 신대산전망터까지 
또 다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900여미터 정도의 거리다.

신대산 전망터의 모습이다.  추자성당 봉고가 수녀님을 모시고 온 순례객을 태우고 와 있었다. 

추자 성당봉고차가  하는 하느님의 사업 첫번째가 무엇일까? 신대산 전망터에 멋있게 서 있는 모습?

눈물의 십자가 까지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데크가 끝나는 지점이다.  십자가가 있는 바위로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위험할 것 같아 포기했다.

십자가의 규모는 가로 3m,  높이 5.5m다.

십자가 옆에 두살난 아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보인다.

신대산전망대에서 예초리 버스 종점 까지 언덕을 내려오는데 약 900여미터의 거리다.
해안을 따라 올레길코스로 걷는다면 조금 거리가 늘어날 것 같다. 언덕을 거의 내려와 마을로 진입하기 전이다.

예초리 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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