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3년만에 정상 개최된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는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을 위해 내한한 배우 '양조위'가 화제를 몰고 다니나 보다.
인터뷰에서 '화양연화'의 캐릭터를 지우기 위해 '2046'에서는 감독에게 부탁해 콧수염을 붙였다는데
수염이 마스크 역할을 해서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최면을 걸 수 있었다는 기사도 접했다.
나도 이참에 양조위가 출연하며 연속성을 가졌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 3편을 소환해 본다.
첫번째가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주연의 '아비정전(1990)'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뜬금없이 양조위가 나오는데 역할도 없다.
한껏 멋을 부리며 옷을 챙겨 입곤 돈다발과, 포커, 그리고 담배갑을 주섬주섬 주머니에 챙겨 집을 나선다.
이름은 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증만 자아내며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maria elena'가 흐르면서 속 옷차림의 장국영이 맘보춤을 추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곤 10년 후 양조위, 장만옥 주연의 '화양연화(2000)'가 개봉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가슴을 아리게 할 때 마다 흐르던 애절한 음악 'Yumeji's Theme'는
많은 영화에서 ost로 사랑받았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2번을 연상케 한다.
그들이 이웃들의 소문를 피해 잠시 만남-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을 가졌던
호텔의 객실번호가 2046이다.
아비정전에서 처럼 장만옥은 수리진 -결혼해서는 남편의 성을 따라 첸부인으로 불린다-의 이름으로 출연한다.
사실 두 영화를 통해서는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화양연화 이후 4년이 지나 개봉된 영화 '2046(2004)'을 통해서야 비로서
아비정전과 화양연화의 연속성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이전 영화들을 다시 봐야 하는 성가심이 필요하다.
아비정전과는 14년의 시차가 있는데 그 당시 양조위의 등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어떨 땐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기한도 약정 없는 감독의 괴팍함이 만들 산물이리라.
2046 ost중 main theme도 좋고 secret garden도 좋다.
세 편중 시작은 화양연화에서 수리진(장만옥 분)과의 아픈 사랑을 뒤로하고
주모운(양조위 분)은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직장의 해외 파견을 자청한다.
'옛날 사람들은 말못할 비밀이 있으면 산에 올라가 나무에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인 후 진흙으로 봉했다'며 그 자신이 읊조리던 것 처럼
앙코르왓을 둘러 보며 인고의 세월로 움푹 파인 기둥 구멍에 사랑하던 여인을 묻었다.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으면서...
아비정전의 마지막에 그가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과
2046년에서 그의 싱가포르 생활이 다시 이어진다.
그의 싱가포르 생활은 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방탕과 도박으로 망가진 삶을 산다.
그때 도박장에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의문의 여인 수리진(공리 분)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녀에게 같이 홍콩에 갈 것을 권유하지만 거부 당한다.
후에 그는 독백한다.
'사랑에 대신이란 없다. 난 동명이인인 그녀에게서 옛 여자를 찾았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홍콩으로 돌아온 그는 아비(장국영 분)를 사랑했던 여인 루루(유가령 분)를 만나 그녀의 옛 기억을 회상시켜 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호텔에서 애인에게 살해된다.
그가 장기 투숙하기 원했던 2046호가 수리중이라 수리가 끝날 때까지 잠시 2047호에 머물게 되는데
수리중인 2046호실에서 루루가 살해된 것을 나중에 알게된다.
그가 2046 숫자에 집착하는건 첸부인(수리진)과의 기억이 있는 호텔 객실번호가 2046호였기 때문이지만
이번에는 2046호가 새로 단장되었어도 옮기지 않았다.
이제 2047호에 익숙해져서다.
이 호텔에 투숙했던 여인 바이 링(장쯔이 분)과도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없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없을까?' 그를 사랑하게 된 그녀의 애절한 간청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떠난다.
주모운의 방황은 언제 끝날까?
2046 숫자가 의미하는 상징성!
2046년은 홍콩이 중국에 복속된지 50년째 되는 해이며, 그때까지 자치권을 인정하겠다는 마지막 해다.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혼란한 홍콩을 걱정하며 그 곳을 떠나고 있었다.
홍콩 사람들은 2046년이 지난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지 않는 듯 했다.
세기말적 징후들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희망이 사라진 미래는 절망뿐이다.
2046년의 미래를 더 빨리 앞 당기고 있는,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근 20여년이 지나 다시 보는 영화는 또 다른 의미의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3편의 영화를 통해 감독 '왕가위'가 추구하려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영화 '2046'에서 동명이인 수리진(공리 분)을 다시 등장 시켜서
새로운 영화 - 제목이 2047일 수도 있겠다-를 또 다른 방향으로 기획하지는 않았을까?
2046년의 홍콩은 2047년에도 같은 이름으로 존재할테고
주모운이 2046호실로 객실을 바꾸는 대신 익숙해진 2047호실에 머문것 처럼
좋던 나쁘던 사람들은 또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갈테니까 말이다
추억은 항상 눈물을 부른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에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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