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의 한반도에서 과거는 미래를 감당할 힘을 상실했고 억압과 수탈을 위장한
문명개화는 약육강식의 쓰나미로 다가왔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발이 쟁여진 탄 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불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작가의 말(P 305)-
안중근은 1910년 3월26일 뤼순(여순)감옥에서 사형 집행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의 시체를 하얼빈에 묻으라'는 안중근의 유언은 일본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했다.
여순 감옥 공동묘지에 묻힌 유해의 행방에 관해서 유의미한 정보는 아직까지 없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도마는 제8대 조선대목구장인 뮈텔 주교의 판단에 따라 ,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한 '죄인'일 뿐이였다. 신자라는 말은 더 이상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천주교 신자로 죽기를 원했지만 교회는 그 자격마저 박탈하려 했는데
또 다른 차원에서 개인의 평화를 침탈하는 폭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천주교회는 대희년(2000년12월3일)을 맞아 '쇄신과 화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하고
한국 교회가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 문건은 한국 교회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데,
결론은 잘못했다는 것을 애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일련의 일들이 그저 허허롭기만 하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다시는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말했으면 좋겠다.
종교가 거대 힘과 결탁하여 공생하면서 행하는 패악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종교 자체가 갖는 불변의 진리는 그들의 구미에 맞게 재단되고 변질되어 갔다.
신은 그들, 인간들의 도구로 전락한 느낌마져 든다.
하지만 세속과 타협하여 얻는 가치는 무한할 수 없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소설인데도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툭툭 튀어 나온다.
문맥상 감은 잡지만 그래도 더 정확한 의미를 알며 내용에 녹아들고 싶어 단어를 검색한다.
또 그렇게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을 읽었다.
무채색 표지 !
작가 특유의 하드보일드 느낌이 드는 담담한 문체 !
'이토'를 죽여야만 하는 안중근의 일관된 의지! 는 같은 결의 절제된 표현으로 소설의 객관성을 유지한다.
책을 읽는 내내 건조하고 냉랭한 초겨울의 찬 공기가 가슴 속을 후벼 파며 시리게 했다.
'하얼빈'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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