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창가에 앉아 여러 날 동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상,하 두권으로 나눠 발행했어도 될만큼 책이 두껍다. 767페이지나 된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많이 읽어요 (p408) '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아이슬란드 국민의 책사랑'이 생각 났다.
국민 10명중 1명이 작가일 정도인데 '어둡고 추운 척박한 자연환경'속에서
'스토리텔링' 발달을 이유로 들고 있다.
'아일랜드'의 'pub 문화' 발달도 비가 자주 오는 날씨 때문이라 들었다.
환경이 문화나 습관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제주에 와서 집을 구할 때 도서관이 가까웠으면 했던 이유는
1년살기가 '정착'은 아니지만 관광이나 여행과는 구별되는 '일상(日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 평소처럼 책도 자주 접할 줄 알았다.
하지만 4개월째 접어들고 있는 지금까지도 책을 손에 잡기가 쉽지 않다.
어찌됐던 야외로 나갈 일이 많다.
'현실은 하나만이 아니다. 현실이란 몇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 잡아야 하는 것이다 (P725,726)'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이 곳 사람들이 싸잡아 말하는 '육지'라는 현실을 버리고
또 다른 '제주'라는 현실의 선택지를 스스로 골라 잡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책만이 아니라 작가의 여러가지 작품을 읽으며 혼란스러웠던 것은
'육지', '제주'라는 시.공간이 확실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의 선택지가 아닌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비현실성'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만나버렸다,라고 해야 할까요. (p579)'라는
말에 주인공이 맞다고 수긍하는것 처럼
열일곱 소년인 주인공이 열여섯 소녀와의 짧았던 만남에서부터 운명적으로 형성된 자아관(?)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확신과 갈등을 반복하게 한다.
그 중심에는 도서관의 '책'과 또 다른 도서관의 책 '오래된 꿈'이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마치 '꿈 읽는 이'가 도서관에서 '오래된 꿈'을 읽듯이 날마다 꾸준히 소설을 썼는데
'그런 상황이 무언가를 의미할 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아마 무언가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고 피부로 실감한다 (p766)'라고 적고 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무엇을 읽었지? 허탈하다..
책속에서 내가 무슨 의미를 찾은건지, 아니면 의미 자체가 없었던 건지,
분명 작가의 의도가 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작가의 많은 책 속에서 느꼈던 모호성만 또 다시 확인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 776페이지를 완독했다는 것뿐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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