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선 거리, 익숙치 않은 환경, 그리고 시차에서 오는 부작용까지도 즐기려했던 17일의 여행..
큰 의미를 두고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진 듯
그냥 걷고, 무의미하게 바라보고, 이동하고
어둠이 오면 조금은 지친 다리를 끌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혼자라는 홀가분함은 얼마지나지않아 휑하게 뚫어진 듯한 허전함으로 대체되면서
짙어가는 가을 색, 그리고 낙엽들과 정말로 어울리는 분위기로 나를 몰아 가고 있었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나흘간은 비까지 뿌려대는 음울한 날씨였다.
나는 우울해졌다.
카렐교를 3번이나 들렸다.
다녀온 여행객들, 그리고 책자에서 극찬까지 하던 카렐교에서 분명히 나도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그 곳은 낮이나 밤이나 수많은 인파들로 붐볐고 난 그들에 떠밀리듯 다리와 주변을 배회했다.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양한 군중들의 표정을 훔쳐 보기도 하고, 거리 악사들에게 매료되어 동전을 던져 주기도 하면서.
그럴수록 외로움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없을 때 카렐교를 느껴보려고 아침 식사 전에 부지런을 떨어 카메라만 들쳐메고 숙소를 나섰다.
걸어가도 15분 거리지만 24시간 교통카드가 유효해 숙소 앞에서 트램을 탔다.
6시30분경, 트램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들은 어둡고 지쳐들 보였다.
내 모습이 그렇게 반영되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트램을 2번 갈아타고 카렐교 초입 Karlovy lanze정류소에서 내렸다.
7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옅은 안개와 어둠은 사물의 윤곽정도만 흐릿하게 보이게할 정도로 어둡다.
그 순간 카렐교 초입 우측에 있는 성당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지 않은 문을 힘겹게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7시미사가..., 생각치도 않게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제대에는 중앙에 노신부 2, 중년의 신부 1 그리고 양 옆으론 부제 또는 학사 정도의 젊은 신부 2명씩 총 7명이 계셨다.
의외로 복사는 보이지 않는다.
신자는 나를 포함 5명, 후에 1명이 더 들어와 6명이 미사를 드렸다.
오르간 소리와 성가는 녹음이 된건가? 아니면 여기선 보이지 않는 2층에 성가대가 있는건가?
확인을 못했지만 새벽 공기를 가르며 더 장엄하고 웅장하게 들렸다. 성체를 모실 때의 뜨거운 감동 그것은 한마디로 감사였다.
30분 정도후 미사가 끝났을 즈음에는
이 다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 그리고 얼마 안되는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카렐교는 어둠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비가 안개처럼 살포시 내리는 이른 아침, 삼각대까지 가지고 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중에 빨간 자켓을 입은 동양인 아가씨가 참 인상적이였다.
사진 찍는데 방해가 될까봐 멀리서만 바라봐서 국적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여유롭고 한가하게 그리고 천천히 카렐교를 걸었다. 스치는 사람들과 가볍게 미소까지 지으며
숙소에 들어와 아침을 먹는데 저절로 성호경이 그려진다. 옆 좌석에 있던 중년 여인이 이상하리 쳐다볼 만큼 경건하게.
그만큼 오늘 새벽의 모든 것이 감동이였나 보다.
다음날이면 이 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여운을 갖고
그 날 하루 나는 아주 천천히 프라하 시내를 걸어 다녔다.
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여유가 생기면 생길 수록 나의 시야에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모습이였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젊은 가족 여행객, 유치원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소풍, 엄마와 딸의 다정한 모습들
오후 3시가 넘었던 시간, 구시가광장 근처에서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꼭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에서도 그들의 따뜻한 부부애가 느껴지고 있었다.
왠지모를 정감에 무의식적으로 셧터을 누르고 그 뒤를 따랐다.
잠시후 방향이 틀렸는지 멈춰서선 가이드북을 보며 한참동안 무언가 얘기를 했다.
그들이 가던 길을 돌려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치채지않게 숨죽이며 일거수 일투족을 훔쳐 보았다.
그리곤 그들이 지나간 그 방향으로 시선을 꽂고 한참을 응시했다.
내가 만난 여행객중 가장 아름답고 . 부럽고, 닮아보고 싶은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내가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하고 마음 한구석이 휑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못하는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홀로서기가 필요할 때는 분명히 있다.
첫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처음의 그 순간 순간 꼭지마다.
물론 첫 여행도 그럴 수 있고
혼자하는 여행 나쁘진 않다.
익숙한 것들과 잠시 떨어져 나자신만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갖는다는거는 삶의 충전이고 활력소일게다.
그 매력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행 마니어들도 많은게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되기 위한 연습도 해야한다는 말들을 많이 듣곤한다.
비껴갔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하는
세월의 덮개가 만든 이것처럼 외롭고 무서운 홀로서기는 없지않을까?
하지만 이 무서운 홀로서기는 조금 더 접어둬야겠다.
우선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막바지에 접어든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겠다.
함께 웃고, 대화하고, 사랑하면서...
2012.10.24.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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