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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책 그리고 영화

by 僞惡者 2019. 3. 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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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1987년 작품 '상실의 시대' 

-옮긴이; 유유정, 문학사상사, 초판1쇄 1989.6.27, 2판84쇄 2000.8.5)를 읽었다.

이 소설의 원제 '노르웨이의 숲'은 

오늘의 젊은 세대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절망적인 상실의 갈등을 노래한 비틀즈의 유명한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상징적으로 쓴 것이라 소개하고 있다.

한국에서 첫 출간 때는 원제를 사용했지만 그보단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변경한 후 더 큰 호응을 받았다 한다.

소설은 죽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자살을 어린 나이에 목격한 주인공들이 

자기 내면과의 힘겨운 싸움을 통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을 애절하게 그려 나간다.

또 다른 축은 무력감에 빠진 주인공의 성적 일탈에 필요 이상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데

'소설은 일단 재미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게  나의 지론이고 보면

성적 판타지를 통해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려는 작가의 의도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독자들을 위한게 아니라 작가는 이런 사실적인 묘사를 다분히 즐기고 있다.


비행기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하자 기내에서 조용한 배경 음악이 흘러 나온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다.

그 음악은 나(주인공인 '와타나베')를 

18년전인 1969년,  곧 스물이 되려던 해에 '나오코'와 걸었던 초원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혼란에 빠뜨린다.

그리곤 기억을 더듬으며 20년전 대학에 입학했던, 열여덟 살의 과거로 돌아간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첫 단락에 나오는 함부르크 공항이라는 장소가  

사건 전개와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는데 전혀 없다.

그러려면 차라리 노르웨이의 숲을 연상 시키는 오슬로 공항이나, 비틀즈의 히드로 공항으로 했으면....!

첫문장에 의미를 함축하기 위해 작가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는데  정말로 아무 의미 없는 지명이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첫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선택한 문장이라 했다.

한 음절의 조사가 빚어내는 내밀한 긴장과 찰나의 도약을 나름대로 해석해보려는

독자들의 시도는 또 얼마나 많이 회자 되고 있던가?


책을 집필했던 장소 역시 엉뚱하다.

작가는 이책을 1986년 12월21일에 그리스 미코너스섬의 한 빌라에서 쓰기 시작해서,

1987년 3월 27일 로마 교외의 아파트와 호텔에서 완성 했다고 후기에서 말하고 있는데

전화도 없고 찾아 오는 손님도 없이 오직 글에만 몰두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고 했다.


미코너스 섬의 한 빌라에서 글을 쓰던 이야기는 

그의 여행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초판 2016.6.1,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그리운 두섬 part에서 술회하고 있다.

'12월, 크리스마스 얼마 전이었다.방에는 조그만 전기난로 하나뿐이었다. 두툼한 스웨터를 입고 덜덜 떨면서

원고를 썼다, 그때는 아직 워드프로세스를 사용하기 전이라 대학노트에 볼펜으로 꼼지락꼼지락 글씨를 써내려 갔다.

창밖으로는 자갈투성이의 거친 들판이 펼쳐지고 .....' (P93,94) 


이 시대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일본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급변하며 요동 치는 시기였다. 작가는 그 시절을 '배멀미의 시대'라고 회상하고 있다. 


정치적인 투쟁이 있었고, 탄압이 있었고, 

히피와 마리화나와 비스마르크와 반전가(反戰歌)가 있었습니다.

지미 핸드리스와 짐모리슨이 있었습니다.

재즈 음악 다방에서는 프리 재즈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스커트가 점점 짧아지고 데모의 열풍에 휩싸였던 대학은 봉쇄된 채로 있었습니다.

악인이 있었고, 선인이 있었습니다. 가치관은 반전되고 또 반전되었습니다.

진짜와 가짜가 똑같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습니다.

진실의 언어가 있었고, 허위의 언어가 있었습니다. 

깨끗함이 더러움이 되었고, 더러움이 깨끗함이 되었습니다. (P 5, 6)


하지만 이 소설에서 사회적 상황에 대한 주인공들의 의식은 개인 관심사외엔 지독히도 아웃사이더로 일관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정치성이나 사회성에 등을 돌린 

지극히 개인적인 소설이라고 느낄 수 있을거라 예단하고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진실이지만 

여기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 모든 사회적 상황들을 '사랑과 죽음' 이라는 큰 틀의 메타포로 번민하려 했는 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감으로서 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p 440) 


'나오코'는 자살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 세상과 단절했다. 그것이 주는 상실감.

정체성을 잃어버린체 극도의 혼란에 빠진 주인공은 또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한다.

그 희망의 실체가 꼭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간절히, 아주 많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당신 지금 어디 있어요?'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얼굴을 들고 공중전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딘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공간의 한 가운데에서 '미도리'를 계속 부르고 있다. (p468)


도서관에서 빌린 2000년도 발행본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표지

작가의 젊은 날 얼굴 사진도 새롭다

2019.  3.20.

책의 원제가 된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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