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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언어로 세운집'

책 그리고 영화

by 僞惡者 2019. 5. 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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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의 '언어로 세운집' -arte출판사-를 읽었다.
부제가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이다

시는 언어의 유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 그리 좋아하지 않는편이다.
시평이라는 것이 평론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해석되기도 하는데
정작 시를 쓴 장본인에게서 행간의 의미를 듣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평론가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어쩌면 하는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 '님의 침묵' 을 예로 들어보면 
'님'은 님이 아니라 조국을 가리킨 것이며, '침묵'은 이별이 아니고 그 조국을 잃은 식민지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기미독립운동의 좌절을 노래한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책에 수록된 만해 선생의 시 '군말'의 해설을 통해
'님을 어느 한정된 대상에 국한시키려 하는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인 말 뜻은 물론 그 정의에서도 어긋나는 것'
이라 말하고 있다. (p119)
'님이라는 한국말의 원형적 의미는 에로스적 사랑만이 아니라 필리아적, 아카페적 사랑의 모든 대상과 관련된 것이다.
즉 '마음속에 기리는 것'이라면 모두 다 님이라고 불렀다'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시인 당신도 님을 넓은 뜻으로 말하고 있는데 민족의 독립이라는 한정적 의미로 단정지으려는 흐름은 아이러니하다.

예전 고 마광수 교수의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에서 여러 한국의 대표적인 시들을 
에로스적 차원에서 해석했던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또한 인상적이었다.
님의 침묵을 남녀의 이별에서 찾으려 했던 그의 생각은 그때까지 교실에서 배웠던 생각을 뒤흔든 신섬함이었다.
아마도 그 책에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도 같은 식으로 해석했던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기억의 오류가 아니라면.....

어쩌면 시는 '언어로 그린 추상화'가 아닐까?

뒷 표지에는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다.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라며 
책의 제목을 함축한 문구가 있다. 이 말을 저자는 서론에서 알기 쉬운 예시로 장황하게 풀어 놓고 있기도 하다.
그리곤 이 책에 실린 32편 시의 제목과 작가를 보여준다.
시에 관심없는 나 같은 사람도 알 수 있는 시인들의 작품이다.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시의 새로운 해석들을 접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이어령 '언어로 세운 집' 표지
2019.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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