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누항사-후진 거리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라 한다.
3부로 나뉘어져 산문들이 실려 있는데 최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내용도 상당수 눈에 들어온다.
단, 작가는 서두에서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3부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 편에는
2018년 가을에 문재인 대통령과 그 일행이 평양에 가서 냉면을 잡수시는 사건을
‘냉면을 먹으며’라는 멋들어진 산문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장황하게 쓴 내용들은 끝부분에서 울림을 주는 문장으로
반복되어지며 마무리되는데 냉면의 맛처럼 담백하다는 생각을 했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영변 약산의 진달래꽃과 영변 약산의 핵폭탄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눈 덮인 안시성의 겨울과 메밀꽃이 피어서 바다를 이루는 고구려의 광야를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청천강에서 싸우는 을지문덕과 불타서 무너지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개마고원의 저녁놀과 백두산의 새벽과 압록강 하구의 밀물과 썰물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평양의 박치기꾼과 강계의 미녀들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마지막 철수선이 떠나던 1950년 12월24일(내가 세 살때) 흥남부두의 눈보라와 아우성을 생각한다.
냉면을 먹으면서 나는 나는 박헌영, 임화,김남천의 죽음을 생각하고 병자호란때 만주로 끌려간 50만명의 포로를 생각한다.
냉면 육수를 마시면서 나는 이 모든 그리움과 회한과 상처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미래가 있음을 안다.
냉면의 맛은 ‘히수무레하고 슴슴하다.’
냉면은 공적 개방성을 미각으로 바꾸어서 사람을 먹여준다.
문대통령이 다음번에 미국 가실 때는 공군 수송기에 냉면 육수를 잔뜩 싣고, 김정은 위원장처럼
국수기계도 가져가서 백악관 마당에 차려 놓고 트럼프, 멜라니아, 이방카와 연방의원들, 주지사들에게
한 사발씩 먹여 주었으면 좋겠다. 아베, 푸틴, 시진핑도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을
한 그릇 먹으면 핵폭탄 문제에 접근하는데 큰 효혐을 볼 것이다.
작가의 상상이 요원해져 버린 현실이 안타깝다.
연 사흘째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 점심은 집사람과 얼큰한 해물짬뽕을 먹으며 을씨년스런 날씨를 달래봤지만
이 비 그치면 우리 지역 최고의 냉면집 '삼정면옥'을 들려봐야겠다.
김훈 산문 '연필로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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