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공지영 장편소설 '먼바다'를 읽고 있었다.
40년만에 만나는 첫사랑, 그리곤? 궁금증이 증폭되며 책장 넘기는 속도에 가속을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신경을 거스리는 소리가 난다.
뭐지?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붉은 꽃잎이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다.
꽃병으로부터 낙하거리는 어림잡아 채 1미터가 안되는 정도.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이란 싯구절이 떠올랐다.
모란 정도는 되야지, 어떻게 꽃잎이 떨어지는데 소리가 날까?
떨어진 꽃잎을 다시 주워 비슷한 위치에서 떨구어 봤더니 정말로 툭하고 소리가 난다.
실내가 너무 조용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 의자에 올라가 낙하 방향으로 떨어진 꽃 잎의 사진을 찍었다.
그 날 읽었던 '먼바다' -공지영 저, 해남출판사- 의 감상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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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분대로 말하고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여전하구나.'(P 192)
40년만에 해후한 요셉이 이미호 로사에게 하는 말이다.
헉! 대부분 활자를 통한 느낌이라 100% 확신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해왔던 작가의 성격과 같다.
그런데 작가는 친절하게도 작가의 말로 끝맺음 하는 마지막 부분에 사족을 단다.
'추신: 이런 말을 해야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 (P 273)
누가 뭐랬남? 물론 작가의 일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녹아 들었긴 하겠지만
픽션을 나의 감정에 이입시켜가며 동화되는 맛에 소설을 읽는건데
그렇게까지 정색을 하며 토를 다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으려나?
주인공들이 평생 아파했던 내면의 힘듦을 이유야 다르지만
요사이 작가 역시 견디고 있다는 완곡함의 반어적 표현은 아닐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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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조차 몰랐던 그를 최근 페이스북 '알 수도 있는 사람' 리스트를 통해 재회하게 되고
독문학 교수인 그녀가 미국 출장길에 미국에 살고 있는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그는 첫사랑이다.
40년만의 해후!
그들에게 정말로 소중했던 시간들은 거짓말 처럼 기억 속에서 조차 지워 버렸는데
그의 여동생이 말한다. '살기 위해 잊었을 거야'(p 234)라고.
40여년동안 깊이깊이 묻어놓았던 그토록 신뢰했던 한사람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반나절의 짧은 해후면 충분했다.
폭풍우치는 밤 뉴저지 한구석 주택가에서 차문이 열리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40년동안 잠자던 따스했던 에메랄드 빛 서해바다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만 돌아가자, 너무 먼 바다까지 나왔어.'
40년 동안 잃어 버렸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끼워지자
잔잔한 바다는 비로소 부드러이 파도치기 시작했다. (P 264)
그들이 만났던 폭풍우 치던 미국의 날씨와는 달리
지구 반대편 한국에 있는 그녀의 딸은 순천 금둔사에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문자로 전해왔다.
'폭풍우와 홍매화의 개화' 그리고 나의 현실에선 책을 읽다가 경험한 '떨어진 꽃 잎'
부조화 같지만 또 다른 플롯으로 작품을 전개할 순 있을 것도 같다. 그러면 쓸쓸하겠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드다.
약간의 여운 조차 남기지 않았다. 작가는 더이상 그들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잃어버린 40년의 시간을 보상받기엔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그녀 이미호 로사의 나이가 작가와 동년배쯤 되는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말이다.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일을 과거의 회상과 연계하며 전개되는 첫사랑 가슴뭉클한 감성적 소설
'먼바다' 이야기다.
공지영 장편소설 '먼바다' 표지와 '툭하고 떨어진 꽃 잎' 사진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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