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인호 작가의 노랫말 '밤눈'이 결국은 작가의 마지막 작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다시 한 번 읽게 했다.
하지만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용은 난해할 뿐이다.
'낯이 익다는 것은 속임수다. 낯이 익다는 것과 설다는 것은 이음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p125
이음동의어 (異音同義語) 소리는 다르나 뜻이 같은 단어!
작가의 모순된 논리는 이 소설만큼이나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익숙해야할 나 자신의 모습이 정말로 낯설어 보였던 경험은 있으니까 말이다.
나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해 나를 버려야만 했던, 그리고 후회했던 일들을 생각해본다.
그때만큼 나 자신이 낯설어 보인 적도 없었을 것이다.
거울 속을 잠시 들여다 봤다.
그리곤 거울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쓸데없는 생각에 썩소를 지었다.
페르소나!
인간의 본성은 민 낯보다 뒤집어 쓴 가면 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내안의 나를 숨긴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이 현대인의 비애는 아닐까?
작가는 현대인들의 무력감에서 오는 권태의 해방구를 성적인 측면에서 찾는 것이 답이라 할만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인정된 K 부부간의 섹스가 연속으로 나온다.
그중에는 나의 분신인 k1의 아내, 또 다른 나의 아내와의 정사를 통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
십여년 만에 만난 친누나에게서 느꼈던 성적인 욕망의 죄책감에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지하주차장에서 승용차가 들썩 거리며 벌어지는 카섹스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고
관객도 몇명 없는 영화관 어둠 속에서 행해지는 사랑의 행위도 본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야릇한 표정과 노출로 K를 유혹하는 여인, 성인방의 코스프레,
집창촌 쇼윈도우의 매춘부들까지 사회는 온통 성애주의 자들의 군락 같다.
K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H의 부부는 서로 상대방을 불신하고 욕을 해대며 불륜을 저지른다.
상대방의 불륜을 불륜으로 되갚는게 시원한 복수가 될 수 있을까?
성의 정체성에서 흔들리는 또 다른 집단들도 등장한다.
게이바에서 만났던 '야누스'라는 사람도 있고,
여장을 했을 때의 이름이 '올렝카'인 예전의 매형, P교수도 있다.
하지만 성적인 일탈로 추구하려했던 작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했다.
어떤면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성을 다루는 부분들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읽었을 때 실망했던 부분도 지금과 같지 않았나 싶다.
소설의 시작 첫 문장이 <POWER ON>이다.
태엽을 감는 아날로그 식이 아닌, 전원을 켜자마자 큰 동력을 가진 에너지가 작동하는 느낌이다.
빅브라더에 의해 시뮬레이션된 가상의 현실이 울부짖듯 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토요일 아침 7시다. 하루는 길고 더디게 흘러가며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조작된 현실에는 빈틈이 있다. K가 사용하는 스킨의 제품등 세세한 것 까지는 챙기지 못했고
매사 규칙적이고 정확한 K에게 의심과 혼란의 계기를 만든다..
일요일에도 아침 7시 울부짖듯 자명종이 울리며 또 하루가 시작되고
그리고 월요일 아침 7시에도 역시 울부짖듯 자명종이 울리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월요일의 하루는 허무하게 빨리 끝을 맺는다.
출근을 하기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로 내려가면서 그동안 등장했던 사람들과 조우한다.
홀로그램이긴 하지만 갓난아이 K와 어머니,그리고 증오했던 아버지가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도 본다.
3분후 열차가 진입한다는 전광판을 보면서 3분후면 혼란스러웠던 3일간의 시뮬레이션,
정확히는 만 2일 2시간도 끝날 것을 예견한다.
그러나 갑자기 발생한 지진에 K는 플랫폼에 쓰러지면서 맞은편 플랫폼에 서있는 소녀가 들고 있는
마법의봉을 본다. 성인방에서 보았던 것이다.
실수로 선로에 떨어뜨린 마법의봉을 찾기 위해 세일러문으로 변신한 소녀는 철길로 뛰어든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K도 같이 선로로 뛰어들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 p378
<POWER OFF>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거대한 에너지의 동력이 갑자기 멈춰지면서 순식간에 암막이 내려지는 느낌이다.
죽는다는 것은 영과 육이 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체가 되는 것일까?
K는 갑자기 자기한테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외부세계에서 찾으려 했지만 잘못임을 깨닫는다.
어렸을 때 K가 또렷이 기억했던 사제의 알 수 없는 라틴어의 전례문
메아쿨파, 메아쿨파 메아 막시마 쿨파!
(내 잘못을 통하여, 내 잘못을 통하여, 나의 가장 중대한 잘못을 통하여 고백하나이다)는
훗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 소이다' 라는 경문으로 번역된 것을 생각하며
미사 전레에서 처럼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듯 세차게 꽝꽝꽝 세 번 내리쳤다.
이 모든 가상현실에서 바뀐 사람은 다름 아닌 K다.
K 본인이 가짜이며, 짝퉁이며, 복제 인간이자, 추적자이며, 위조 인간이다.
이러한 기현상은 다름 아닌 K의 탓이고, K의 탓이며, K의 큰 탓 때문인 것이다. p296
K는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부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엉켰던 실마리들이 하나 둘 풀리듯 속도를 낸다.
하지만 나로선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왜 일어 났으며
K가 죽음을 통하여 땅과 바다가 생기기 그 이전 오직 말씀만이 존재하던
카오스의 신세기이자 오메가의 천국으로 회귀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K야, 이제 그만 사다리에서 내려와라
k는 자신이 사다리에 올라간 적이 없었으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큰 호흡과 함께 숨을 거두셨다. p115
사다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려 온다는 것! 내려놔야 한다는 것! 구약의 '야곱의 사다리'를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것, 세일러문 소녀를 구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희생을 치룬 것!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 때문에 고무 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작업실에 출근해서 정확히 두달동안 집필했던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였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회고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자발적으로 쓴 최초의 전작소설이라 말하고 있는데
천주교 신자로서의 종교적 영역과 삶의 본질에 대한 고뇌가 담겨져 있지는 않나 싶다.
'나는 누구인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2023. 1. 1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0) | 2023.03.16 |
---|---|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 (0) | 2023.02.11 |
영화 '영웅' (1) | 2022.12.28 |
영화 '아바타:물의 길' (0) | 2022.12.23 |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 (0) | 2022.11.21 |
댓글 영역